후대(後代) 화론가에 의하면 이공린의 화풍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는 매우 큰 가치로 새 화풍의 표현과 독창적 영역으로 이끌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공린의 그림에서 불교(佛敎), 도교(道敎)를 접하기 전까진 도석화의 위치, 비중이 적었다.  송(宋)대 문인들에 의해 도석화의 관심은 점차 가치를 높이는 계기가 됐다.  후대(後代) 문인화가들이 그린 도석화에 매, 난, 국, 죽의 화면 등장은 회화사의 흐름에서 자연스러운 생성과 소멸의 회화기법 카테고리를 경험하게 된다.  백묘(白描)법의 성장 발전은 사군자 화조화의 진지하고 깊이 있는 먹의 농담에 대한 사유의 인식을 이끌었다.  화원과 문인화가들에게 자극의 여운을 제공했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