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상주동학문화제가 지난 23일과 24일상주시 은척면 우기리 소재 상주동학교당에서 개최됐다. 상주동학문화재단이 주최·주관하고 경북도와 상주시가 후원했다.  축제는 인권신장과 민주주의 발전에 획기적인 계기를 마련한 동학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고 국가지정기록물 제9호로 지정된 상주동학교당의 1400여점 기록물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지난 2019년 제5회 문화제에 이어 올해도 동학문화제가 성대히 개최됐다. ■ 제6회 상주동학문화제 `생명존중 인간존중 평화존중`이라는 주제로 열린 문화제는 동학시극, 검결 퍼포먼스, 동학복식 무(舞), 국악 한마당, 청수 소원빌기, 동학퀴즈 열전, 상주동학 헌성식 재현, 동학유물 해설 및 동학복식 전시, 풍물패 길놀이, 빈막(빈대떡 막걸리) 한마당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또한 초·중·고 학생 및 일반인들을 위해 동학유물 채색 및 마스코트 제작 체험, 동학목판 탁본 체험, 동학복식 입어보기 체험, 소코뚜레 걸기 등 흥미롭고 유익한 동학관련 체험학습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준비했다.  지난 23일 오전 11시 풍물패 길놀이와 동학복식 무(舞)를 시작으로 해 오후 2시에 문화제 개막식과 함께 검결 퍼포먼스, 동학시극과 동학퀴즈열전, 국악 한마당, 상주동학 헌성식 재현 등 다양한 볼거리들이 펼쳐졌다.  24일에는 청수 소원빌기, 동학시극 및 동학심포지움이 동학교당 특설 무대 및 교당 영상실에서 개최된다. 특히 `검결 퍼포먼스`에서는 정통 동학 검무가 공연돼 큰 관심을 끌었다. 동학문화제 기간 동안 은자골 빈막 한마당에서는 마을 부녀회장을 비롯해 부녀회원들이 관람객들에게 상주 은자골 막걸리와 빈대떡을 무료로 제공해 축제의 흥을 북돋웠다. ■ 상주 동학심포지엄 상주동학교당 영상실에서 지난 24일 이순희(경북대)교수의 사회로 동학사상의 재조명 `상주 동학교당 기록물을 중심으로` 심포지엄이 개최됐다.  이날 류해춘(성결대) 교수는 `19세기 동학에 나타난 보국안민(輔國安民)의 의미와 수사학`에서 "보국안민의 의미는 1910년 일제에게 국권을 잃게 되자 동학에서는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고 백성을 편안하게 한다"는 뜻으로 변화게 됐다. 그리고 지난 1919년 3.1운동 이후에는 동학에서 보국안민의 정신은 대한민국의 국권회복을 위한 독립운동으로 이어지게 됐다"고 발표했다.  백운용(경북대)교수는 `조선 후기 민본주의의 세갈래와 상주 동학교 민본주의의 의의`, 최용우(대구한의대)교수는 `상주동학가사를 통해 본 동학의 인간평등 사상과 그 문화적 의미`, 박병훈(서울대) 교수는 `상주 동학교 선천회복 사상 연구`를 발표했다. 이어 신두환(안동대) 교수가 좌장이 돼 종합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  김문기(사진) 상주동학문화재단 이사장은 "동학문화제를 통해 인간과 평화를 존중하는 동학 정신을 되새기고 동학의 유무상자(有無相資) 사상을 발휘해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이 서로 나누고 도와 어려운 경제 난국을 극복하고 동학정신을 창조적으로 계승하자"고 말했다.  한편 상주 동학교당 기록물은 지난 1890년부터 1950년 전후까지 상주 동학교에서 포교활동을 위해 생산한 기록물 일체로 전적(典籍), 판목(板木), 복식(服飾), 교기(敎旗), 의기(儀器) 등 289종 1425점으로 이뤄져 있으며 경북도 민속문화재 제111호, 국가기록원 국가지정기록물 제9호로 지정돼 있다.  김문기 이사장은 그동안 자문회의, 국제학술회의, 현지답사 및 자료조사 수집, 국외 세계기록유산 비교 연구 등을 통해 세계기록유산 등재요건 충족여부와 세계유산적 가치 평가에 대한 다양한 연구를 진행해왔다.■ 인내천, 사람이 곧 하늘이다 동학은 지난 1860년 최제우(崔濟愚)에 의해 창도된 한국 근대의 신종교이다. 구한말 민중들에게 인간의 존엄과 만민평등 사상을 심어줬다. 19세기 후반 서양 세력의 침투와 조선 사회의 내재적 위기 속에서 보국안민(輔國安民)·광제창생(廣濟蒼生)을 내세우면서 등장했다.  당시의 유교는 성리학적 명분주의에 빠져 변화하는 사회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고 불교 역시 조선시대 500여년 간 정책적으로 탄압받아왔으므로 새로운 사회를 주도할 자체의 역량이 부족했다.  또한 서양의 천주교가 서학이라는 이름으로 조선사회에 들어와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이러한 서학의 침투에 대항하는 한편 새로운 이상세계의 건설을 목표로 등장한 것이 동학이다.■ 갑오동학농민운동(甲午東學農民運動) 1893년~1888년 동학 지도자들과 동학교도 및 농민들에 의해 일어난 민중의 무장 봉기를 가리킨다. 반봉건 반제국주의 투쟁을 통해 인권신장과 민주주의 발전에 획기적인 계기를 마련했다. 동학농민운동은 크게 1894년 음력 1월의 제1차고 부 봉기와 음력 4월의 제2차 전주성 봉, 음력 9월의 제 3차 전주·광주 궐기로 나뉜다.  교조 최제우의 신원 외에도 기존 조선 양반 관리들의 탐학과 부패, 사회 혼란에 대한 불만이 쌓이다가 지난 1882년(고종 19년) 전라도 고부군에 부임된 조병갑의 비리와 남형이 도화선이 돼 일어났다. 부패 척결과 내정 개혁, 그리고 동학 교조 신원 등의 기치로 일어선 동학 농민군 중 일부는 흥선대원군, 이준용 등과도 결탁했다. 전봉준은 대원군을 반신반의 하면서도 명성황후와 민씨 세력의 축출을 위해 대원군과 손을 잡았다. 대원군 역시 명성황후의 제거를 위한 무력 집단이 필요했고 동학 농민군과 제휴하게 된다. 동학 농민군 중 일부는 탐관오리 처벌과 개혁 외에 대원군의 섭정까지도 거병의 명분으로 삼은 바 있었다.  한편 동학 농민군의 지도자들 중에는 전봉준, 김개남 외에도 손화중, 이방언 등 농민군 남접의 최고 지도자들 상당수가 흥선대원군과 연결돼 있었다. 흥선대원군과의 연대를 못마땅히 여긴 김개남은 수시로 전봉준과 충돌하다가 독자적인 행동을 하기도 했다. 임창완 기자changwan12@naver.com 김희동 기자press8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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