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6년 부처님오신날 봉축 법요식이 지난 8일 오전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골굴사에서도 열렸다. 알록달록한 빛깔로 하늘을 수놓은 연등 아래 올해는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로 3년여 만에 대규모 행사로 열렸다. 법요식이 열린 오전에만 시민과 관광객 수백 명이 행사에 함께 했다. 이날 법요식은 코로나19의 세계적 유행으로 인한 고통을 넘어서 희망을 되찾자는 소망을 담았다. 오후에 3시 대적광전앞에서 열린 선무도 공연에도 많은 참배객이 함께해 오랜만에 생동감 가득한 시간을 가졌다. 참가자들은 마스크 착용 등 최소한의 방역수칙을 지키며 대웅전 앞마당을 환하게 뒤덮은 연등 아래에서 부처님오신날의 의미를 되돌아봤다. 이날 코로나19 유행 이후 처음으로 공양간 문을 열기도 했다.   ■ 골굴사, 우리나라 최대 석굴  함월산 첫 기슭에 위치한 골굴사(骨窟寺)에는 신라불교의 발상지로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조선 중기 겸재 정선의 그림으로 볼 때 골굴사는 여러 석굴들 앞에 목조 전실을 만들고 여기에 기와를 얹은 형태이다. 현재 앞면은 벽을 만들고 기와를 얹어 집으로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천장도 벽도 모두 돌로 된 석굴이다. 굴과 굴로 통하는 길은 바위에 파놓은 가파른 계단으로 연결돼 있다. 우리나라 유일하게 굴 안에 관음상과 지장불, 약사여래불을 모신 법당이 있다.  골굴사는 국내 유일의 석굴사원으로 알려져 있다. 신라 불교의 번성기인 6세기경 인도의 광유(光有)성인 일행이 와서 석회암질의 거대한 암벽에 마애여래불(보물 581호)을 조성했다. 또 12곳에 굴을 뚫어 굴안에 관음상과 지장불 약사여래불 등을 모셨다한다. 나머지 굴들은 형체만 남아있다. 이러한 골굴사의 고난은 조선 중후기에 화재로 소실된 상태로 방치됐던 것이라 전한다.  인근의 기림사도 광유성인이 창건한 임정사로서 원효대사가 중창해 기림사로 개칭했다고 한다. 이 두 사찰은 역사적·지리적으로 호국불교, 불교무술, 승병 등 키워드와 밀접한 연관을 맺는다.  신라에서 태동한 승병은 고려조 항마군에 편입돼 몽골의 초토화 전에 과감히 맞섰다. 참혹했던 임진왜란 때도 수많은 승병들이 이름 없이 산화해 갔다. 하지만 일제가 주도한 1894년 갑오경장으로 인해 1400년을 이어온 승병은 공식적으로 폐지됐다.  적운 스님은 "그때 경주 기림사에는 278명의 승병이 수도를 하고 있었다"라며 "그들은 흩어져갔고 결국 조선왕조는 국권을 잃고 말았다. 나라 잃은 백성의 고통과 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부처님오신날 하루 지난 9일 부산에서 온 최모씨는 "심신이 지칠 땐 경주 골굴사를 찾아 참배를 하고 마음을 다잡곤 한다"라며 "연등으로 가득한 가파른 산문을 오르니 힘이 들지만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기분을 좋게 한다"고 말했다. ■ 적운 스님, 원효의 화쟁사상 실천  불가에서는 인연을 중시한다. 적운 스님은 속세로 말하면 원효대사의 46세손이다. 설씨로 태어나서 이곳 골굴사에서 일생일대의 대업에 매진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함월산 자락 골굴암에 적운 스님이 왔을 때는 작은 암자와 무너진 토굴뿐이었다. 1986년 32세의 나이에 인근의 유서 깊은 기림사 주지가 됐던 적운 스님은 4년 만에 그 자리를 물려주고 골굴암 가는 산길에 올랐다. 당시 암자와 석굴 등 60평의 작은 절이었다. 1989년 개인에게 매매된 것을 당시 기림사 주지 적운 스님이 다시 매입해 대한불교 조계종 11교구 골굴사로 등록해 등기 이전됨으로 현재는 불국사 말사로 등록돼 있다.  무예인을 떠나서 한 수행자로 원효대사를 존경하며 따르고 있다. 원효대사의 화쟁사상을 몸으로 실천하기 위해 출가승으로서 깨달음에 전진하고 있다. 화쟁사상(和諍思想)은 모든 논쟁을 화(和)로 바꾸는 불교 사상으로 우리나라 불교의 저변에 깔린 가장 핵심적인 사상 가운데 하나다. 적운 스님은 우리사회가 대립과 갈등에서 벗어나 상호 존중과 화합에 나설 것을 당부했다.  적운 스님이 해동사문(海東沙門) 원효(元曉) 술(述)의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의 `고악아엄(高嶽峨嚴)은 지인소거(智人所居)요, 벽송심곡(碧松深谷)은 행자소처니라`를 자신의 출가와 수행에 대입해 담담히 이야기했다. 그는 출가한 수행자의 마음가짐을 일깨우는 이 구절이 속세에서도 스스로 자신을 잘 닦으면 성인과 부처가 될 수 있음을 가르치고 있다고 말했다. 범어사에서 수행을 한 후 총정리를 위해서 태백산 암자에 들었다. 그때 1년여 동안 토굴에서 참선과 무예를 연마했다. 20일 단식도 두 번 했다.  적운 스님은 "우리 역사를 보면 국민의 마음이 하나로 모였을 때 전쟁을 비롯한 어떤 위기도 모두 극복해냈지만 지도자들이 분열하고 반목하면 민중의 삶이 피폐해지고 국난을 자초했다"고 지적했다. 또 "올해 국가의 중대사와 우리 종단의 중대사가 모두 한단계 성장과 발전을 이루는 화쟁의 역사 희망의 역사가 되도록 해야겠다"고 강조했다,  덧붙여 "코로나19의 긴 터널을 지나와 위드코로나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존재로 인해 사람들은 두려워하고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이들도 있고 서로 대립하며 갈등하기도 한다"라며 "질병의 두려움과 고통이 사라지기를 바라면서 봉축의 기쁨을 함께 누리길 기원하다"고 했다. ■ 선무도, 깨달음을 위한 수행  옛 신라 화랑이 명산대천을 찾아 심신을 수련하던 자리. 선무도는 불교의 전통 수행법인 안반수의경의 금강영관이 본래 이름이다. 안반수의란 곧 들숨과 날숨에 정신을 집중하는 선정수행을 말한다. 호흡조절로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이다.  숭유억불의 조선에 이르러 불교 무술은 억압을 받아오다가 임진왜란 당시 필요로 인해 승병제도가 지난 1592년부터 갑오경장이 일어난 1894년까지 운영됐다. 갑오 이후 승병제도가 없어지고부터 선무도의 맥이 끊어졌다. 1960년 범어사의 양익스님이 선무도를 복원한다. 골굴사 적운스님을 비록해 보령 백운사 법천 스님, 마산 성덕암 가영 스님 등 선무도를 대표하는 스님들이 모두 양익스님의 제자들이다. 선무도는 깨달음을 위한 수행법이기에 적을 이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이기는 무술이다.  적운 스님은 조계종 국제포교사로 영어에도 능통해 웬만한 대화는 직접 소통한다. 연간 골굴사를 찾아오는 외국인 7000여명과 해외 초청 강연에서 만나는 3000여명 등 도합 1만명에게 한국 불교의 정신과 우수성을 선무도와 함께 포교하는 것을 가장 큰 보람으로 여긴다.  지금은 `세계선무도총본산`으로서 9만평의 넓은 가람에 선무도대학, 화랑학교, 승마장, 국궁장을 갖췄다. 특히 1일 300명 규모의 템플스테이는 70% 이상이 해외 수련생이 이용하는 등 한국불교 세계화의 전진기지가 되고 있다. 경주시가 운영하는 시티투어 중 동해안 코스 버스를 타면 골굴사에 들러 월요일은 제외하고 오후 3시에 선무도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골굴사 선무도를 배우기 위해 연간 2만여명이 찾아오고 셋 중 한명은 외국인이라 했다.  지난 3월부터 선무도 체험과 템플스테이가 재개돼 내외국인들이 방문을 하고 있다. 함월산 골굴사가 세계인의 힐링과 기도의 도량으로 널리 뻗어나가기를 기대해본다.   김희동 기자press8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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