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이 올해로 100주년을 맞았다. 1922년 아동문학가 방정환이 이끄는 천도교 서울지부 소년회에서 `어린이날`을 선포하고 이듬해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정한 것이 효시다. 방정환 선생은 일제와 어른들에게 억압된 아동들의 권리를 찾아주기 위해 어린이날을 만들었다. 일제강점기 말에 중단됐다가 1946년 기념일이 다시 거행되면서 5월 5일로 변경됐다. 어린이날 100주년을 맞아 어린이를 사랑하고 아이들의 인격을 존중하는 동심의 작가 박숙희 동화작가를 만났다. ■ 동화 속 주인공에 자신의 모습 투영  평론가 원유순 박사의 평론에 의하면 박숙희는 이상주의적 낭만과 인도주의 사상이 짙은 작품만을 고집해 온 순수 동화작가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가 쓰는 작품은 대부분이 순진무구한 동심을 지닌 인물들이 만들어 가는 사랑의 판타지로서 유토피아적 세계를 그리고 있으며 그의 유려하고 시적인 문체는 독자에게 읽는 맛을 더해주어 남녀노소가 읽어도 전혀 손색이 없다.    박 작가는 "100년 전의 어린이들이 일제 치하와 가부장제에 치여 억압받고 6.25 전쟁을 겪은 아이들이 가난과 굶주림 속에서 고통을 당했지만 그들의 정신은 오히려 밝고 건강했다"라며 "가장 좋은 책을 읽고 코로나19로 움츠렸던 몸과 마음을 푸른 들판을 달리며 건강한 어린이로 잘 자라주기 바란다"고 했다.  원조동화작가 안델센은 동화는 남녀노소가 읽도록 창작했는데 나누기 좋아하는 학자들이 아동문학으로 분류하는 바람에 아동문학 장르에 속하게 됐지만 실상 동화는 강팍한 어른들도 읽어서 순수성을 되찾도록 해야 한다.  박 작가가 쓰는 작품은 사람보다 동물이, 동물보다 식물이 사는 세상을 배경으로 한 우의적인 동화가 대부분이다.    오랜 세월 가슴속에 품어 온 그리움이 눈물의 꽃이 된 `아카시나무`, 남보다 늦은 탓에 인고의 세월을 보내다 아픔의 자리마다 노란 꽃을 피운 `민들레`, 오염된 세상에서 죽어 가다 마음씨 착한 바람의 도움으로 기사회생한 경주 계림의 `홰나무` 등이 그 예다.    또 좋은 진주를 품기 위해 고통의 나날을 견딘 `가리비`, 고통의 허물을 벗고 나비가 된 `애벌레`, 심장병을 앓다가 죽어 간 `미란이`, 장애아로 태어나 인고의 나날을 보낸 `달이 공주` 등은 순수하고 선한 식물의 이미지를 지닌 인물들이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삶을 개척하기보다 참고 인내하며 끝없이 자신을 담금질하며 비우고 내려놓는 삶을 살아 냄으로써 마침내 보상을 받는다는 식의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고 평했다. 그는 작품 속에 자신의 모습과 사상을 투영시키는 작업을 계속해 온 것이다. 작가들 사이에서도 감정이입에 능숙해 판타지동화를 잘 쓰는 작가로 널리 평가받는 작가다. ■ 질문이 많았던 어린아이에서 동화작가로  그는 50대 초반 복잡한 아파트촌으로 변한 시내의 삶을 버리고 조용히 글을 쓰며 살고 싶어서 경주 도지동 전원으로 이사했다.    텃밭과 정원을 마련해 소나무와 야생화를 가꾸고 글을 쓰며 목사이자 시조 시인인 조동화 시인의 목회 일을 돕고 있다.    그는 "이젠 유유자적하게 살아도 좋을 나이인데도 어찌 된 셈인지 젊은 시절보다 더 바쁘다. 그렇지만 그 어느 때보다 즐겁게 살고 있다"라며 더 바쁘게 사는 원인은 자신이 쓴 성경 동화에 삽화를 그리는 일을 추가했기 때문이란다.    박숙희 작가는 경남 창원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질문이 많은 아이로 주변인들을 꽤 귀찮게 했다. 사람들이 귀찮아하니 책에서 그 답을 얻으려고 책을 많이 읽었다.    또 어머니나 외할머니가 늘 책을 읽는 분들이어서 그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오래도록 독서를 하다 보니 자연히 글을 쓰게 되고 1988년 매일신문 및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동화가 당선돼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계몽아동문학상, 세종아동문학상, 경주시문화상(문학부문) 등의 상을 받았으며 그가 쓴 책들은 대부분 문체부 우수도서에 선정돼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동화집에 `진주가 된 가리비`, `우두커니 아저씨`, `새를 기다리는 나무`, `삐쥬리아 공주`, `따뜻한 손`, `숲속의 궁전`, `자연이 들려주는 지혜동화`, `난 두목이 될 거야`, `돌아온 동경이(공저)`, `박숙희 동화선집` 등과 그림책 동화와 리라이팅 작품들을 보태면 30여권 가량의 책을 썼다.    제7차 교육과정 초등 6학년 읽기 교과서에는 `가리비와 소녀`가 8차에는 `별주부전`이 수록돼 이 땅의 어린이들에게 동화문장의 진수와 아름다움을 보여줬다. ■ 절대자 신의 존재를 상징화  `지식을 만드는 지식` 출판사에서 간행한 그의 동화 선집에 실린 평론에서 박숙희에게 이데올로기는 `기독교적 사상`이라고 평했다. 그래서 성경에 나타난 사랑과 정의, 그리고 절대자 신의 섭리가 작품 전반에 녹아 있다.    그의 작품들에서는 절대자 신의 존재가 상징화돼 곳곳에서 나타난다. 달님, 해님, 바람 등의 자연물은 인물에게 삶의 지표를 제시하거나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존재로서 절대자를 상징한다. 또 신의 메신저인 `천사`와 `시동`등이 등장하기도 하고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진짜 왕`이 등장한다.    낮은 곳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영위하는 인물들에게 절대자는 용기를 주며 격려하거나 옳지 못한 행동을 하는 인물에게 호된 꾸지람을 내리기도 한다. 흰눈썹황금새에게 상처를 받고 삶을 포기하려는 아카시나무에게 용기를 주는 돌개바람(`흰눈썹황금새 이야기`), 진주를 품은 것을 알고 거만하게 행동하는 가리비에게 꾸중을 내리는 달님(`진주가 된 가리비`) 등이 그 예다.  `우두커니 아저씨`에서 우두커니 아저씨는 한 끼 이상의 양식을 모으는 일이 없고 두 벌 옷을 아껴 두는 법이 없다. 자신을 이용하는 철이 아버지에게도 말없이 순종하며 때리는 매를 고스란히 맞는다.    이는 박해받는 그리스도를 연상시킨다. `금촛대와 뚝배기`에서 보잘것없는 모습으로 태어난 뚝배기는 찬장 안의 금촛대와 다른 그릇들에게 멸시를 당하지만 `사랑은 참는 것이며 그것이 곧 내게 충성하는 것`이라는 주인의 말을 믿고 순종한다는 식의 기독교 사상이 작품 전체에 녹아 있다는 호평을 받았다.    박숙희 작가는 "현재는 성경 동화를 쓰고 삽화 그리는 것이 급급해 창작동화는 청탁이 와도 거절하고 있는 형편이다"라며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쉬우면서도 진중한 성경 동화를 집필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희동 기자press8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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