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the economy, Stupid)"라는 구호로 지난 1992년 미 대통령 선거 당시 민주당 빌 클링턴 후보가 현직 대통령 공화당 부시 후보를 물리치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가 아니라 "바보야, 진짜 문제는 정치야.(It`s the politics, Stupid)" 시대가 도래된 것이 오래된 것 같아서 걱정이다.
현재 우리 경제는 2분기의 전기 대비 마이너스 0.2% 이어 3분기에도 경제성장률이 한국은행의 예상치 0.5%보다 크게 못 미치는 0.1%를 기록하는 등 비상등이 커졌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경제의 기초 체력, 즉 잠재성장률의 저하이다. 잠재성장률은 생산 자원을 모두 투입해 물가 상승 등을 유발하지 않고 최대한 달성할 수 있는 성장률이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올해 한국의 잠재성장률(2.0%)로 처음으로 미국에 추월당했다. 한국 GDP의 16배나 되는 미국의 잠재성장률(2.1%)에도 못 미치는 수치이며 결국 이는 경제의 기초 체력이 악화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미국 등 주요 경쟁국이 기술혁신과 고급인재 육성으로 노동생산성 제고를 통해 성장 잠재력을 키우고 있는 반면에 우리는 인구구조 위기로 과감한 구조개혁이 없으면 오는 2030년대엔 0%대로 추락이 불 보듯 뻔한데 노동, 연금, 교육 등의 개혁은 표류 중이고 성장엔진은 급속히 식어가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정치권의 위기의식과 절박함은 보이지 않는다. 한국경제의 위기 징후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또 다른 상징적 사례가 국내 대표기업인 삼성전자의 위기이다. HBM(고대역폭메모리)에서는 SK하이닉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에서는 TSMC에 각각 끌려 다니는 모습이 안타깝다. 물론 자체 내부적인 문제도 있지만 과거 문정부 때 삼성전자를 겨냥해서 총수를 사법처리한 데 이어 노조를 반대하거나 주 52시간 근무제를 지키지 않으면 엄청난 죄악을 저지른 듯 분위기를 조성한 정치권의 책임도 결코 적다고만 할 수가 없다.
오늘날 경제는 더 이상 독립된 영역이 아니라 정치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으며 정치와 경제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정치가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있는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최근 세계 경제 양대 축인 중국의 경제가 휘청이고 있다.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당장 곧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의 경제대국이 될 것이라던 `중국몽`은 문자 그대로 한여름 밤의 꿈이 되고 있다.
이러한 중국 경제의 추락 주요 원인으로 중국의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기 때문이라는 미 MIT대 황야성 교수의 지적을 눈여겨 봐야 한다. 즉 최근의 권위주의적 통치 방식으로의 회귀는 경제를 질식시키고 말았다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도 최근 경제가 기재개를 켜고 있지만 잃어버린 30년을 겪는 원인이 사류 정치 때문이었다는 지적이 있다. `미스터엔`으로 유명한 평론가 사카키바라 에스케는 정치와 기업의 불균등한 발전이 일본의 발목을 잡았다고 진단했다.
즉 저질 정치가 경제를 망친 주범이라는 것이다.
최근 한국의 경제 역동성 추락과 국가경쟁력 약화의 근본 원인은 국내 정치 역주행과 구조개혁 표류에서 찾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정치 상황은 어떠한가? 여당의 `자중지란` 그리고 야당 대표의 1심 재판을 앞둔 `물타기용 장외투쟁`은 경제와 국민들을 불안 속으로 몰아 놓고 있다. 지금이라도 정쟁을 멈추고 엄습하는 경제위기의 근원을 토론하고 해법을 도출하는 `협치`의 장에 나와야 한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지난 1995년 베이징에서 했던 "기업은 이류, 행정은 삼류, 정치는 사류"라는 일갈이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는데도 요즘 왜 다시 뇌리를 맴도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바보야! 진짜 문제는 정치야!`는 구호가 이제는 남의 나라 이야기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