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대 문인화가들의 그림을 보면 이전시대 대가들의 그림을 감상하고 임모하거나 재창조의 사의성을 표현했다.      북송대(11세기) 관역허(郭若虛)의 론(論)에서 오대(五代)를 보면 `황전 부귀체(富貴體), 서희 야일체(野逸體)`라고 했다.  송대 그림과 문인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는 화원화와 문인화의 흐름으로 이어졌다.  구륵진채와 수묵몰골의 활발한 형성은 화조화가 순수 회화로 빠르게 성장을 이어가게 했으며 화조화와 함께 사군자의 사생(寫生)은 11세기에도 관심의 선두에서 품격 있는 문인화를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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