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는 예로부터 품격과 빼어난 운치, 맑고 은은향 기는 절개의 상징으로 여겼다. 아름다움이 꽃중의 으뜸이라 화중군자(花中君子)라 했다.
세상을 뒤로 한채 생사를 순응하며 살았던 임포(林逋, 967~1028)는 창주 서호고산에 은거하면 독신으로 살았고 북송대 인종이 내린 시호 임화정(林和靖)으로 불렀다.
매화를 애호해 300본을 심고 매화를 아내로 삼고 학을 아들로 삼았다는 매처학자(梅妻鶴子)의 고사는 이상적 은둔자의 삶으로 뛰어난 많은 시를 남겼고 그 중에 임화정집(林和靖集)이 있다.
후대에 서화가들은 학을 길들이는 고사를 모사한 무학도, 쌍학도와 매화를 사랑한 애매도를 그렸으며 이를 통해 임포의 생활을 동경했음을 볼 수 있다.
중국의 전설과 신화에서 학은 귀하고 신령스러운 존재로 표현되며 송학도(松鶴圖), 삼우도(三友圖)와 함께 그렸다.
대표적인 시 산원소매(山園小梅)의 일부를 보자.
모든 꽃 떨어진 후 홀로 피어나네풍정을 다 차지하려 조그만 정원을 항하였네성긴 그림자 비스듬한 가지는 맑은 물 위에 비추고은은한 향기는 황혼녘에 짙어오네
산원소매는 후대인들에게도 영감을 줬으며 시문과 그림에 표현됐고 그리워진 가지와 고즈넉한 매화의 운치는 문인화 표현의 또 다른 시선으로 일깨워졌으며 서위(徐渭, 1521~1593)의 수묵화훼도에서도 엿볼 수 있다.
성당시기의 자연주의 시인 이백, 두보, 왕유, 맹호연은 정치적으로 안정적인 시기에 문학적 성취를 이뤘으며 송대 문인들에 영향을 끼쳤다.
다분히 무위자연의 사상체계화에 연관한 춘하추동, 자연운행에 순응하고 만물과 합일하는 은둔자의 삶을 살았다.
문인 서화가들은 현실의 삶에서 벗어나 심산유곡에서 독서를 하며 매화를 감상하는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 를 흠모해 많이 그렸다.
서옥도 고사화는 문인 서화가들의 마음을 담았다.
소동파가 임포를 평가한 것을 보면 "그가 평생 고결한 뜻을 잃지 않고 살았던 것을 높이 평가했다"고 쓰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