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은 모든 꽃들 중에 가장 먼저 피고 거친 가지에 추위를 견디며 여린 꽃잎을 피우기 때문이다.  빙자옥골(氷姿玉骨), 옥선(玉仙)이라 하며 고고한 모습과 맑고 은은한 향기는 시문 문인화의 소재가 됐다.  고난의 시간을 견디고 귀품있는 꽃을 피우는 식물의 생태는 선비들의 학문을 하는 자세와 인품에도 비유된다.    진대무제의 학문에 대한 견해에서 "학문을 열심히 하면 매화가 피고 학문을 게을리하면 매화가 피지 않는다"라고 하는 호문목(好文木)의 고사가 있으며 6C 시경(詩經)에 매실 따는 노래를 보자.  "매실을 따고 나니 7개가 남았네. 나를 찾아온 님은 좋은 날에 오소서".  매화의 인식이 희구와 축원의 의미가 담겨있으며 애호하며 매화가 피는 겨울 숲속을 찾아 떠나는 탐매 풍류가 자연스레 문인들의 연례행사가 됐다.  당대 맹호연(689~740)은 매화를 애호해 첫 매화가 필 때면 술과 말을 타고서 파교다리를 건너 산 속을 헤매며 매화를 찾아 밤이슬을 맞으면서 매화와 함께 했다는 `파교심매` 고사가 알려져 있다.    매화를 보러 떠나는 것을 탐매(探梅), 심매(尋梅), 방매(訪梅)라고도 한다.    탐매(探梅)는 문인들이 주향(酒香)과 매향(梅香)에 취하며 풍류와 멋으로 여겼다.  동진시기의 산수 자연 시인 도연명의 서계관에 영향받은 맹호연이 녹문산에 은거하면서 지은 야귀녹문산가(夜歸鹿門山歌) 중 일부를 보자.  녹문의 달은 안개 걷힌 나무를 비추는데 갑자기 다다랐네 방공이 숨어 살던 은거지에 바위 문솔길이 오래도록 적료한데 오직 숨어사는 사람 있어 혼자서 오가네  방공은 한 때에 은일의 삶을 살았으며 "관식은 위대할 수 있지만 초야의 삶은 후손에게 평화를 준다"는 말을 남겼다.  시문을 통해 맹호연도 방공을 동경하며 장안의 동쪽 깊은 골짜기에서 은거하는 삶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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