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7호에 이어>= 이준석은 `공존`을 `샐러드 볼` 이론으로 쉽게 설명했다. 양식에서 등장하는 다양한 야채로 구성된 샐러드의 특징이 있다.  양상추, 콩, 셀러리, 오이, 아보카도, 달걀, 브로콜리 등이 자신의 고유한 모양을 유지한 채 접시 위에 기죽지 않고 올려져 있다.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음식 비빔밥은 `샐러드 볼` 이론에 딱 들어맞는 예다.  비빔밥에 첨가되는 다양한 고명들, 각자가 자신의 품위를 유지하면서 `비빔밥`이라는 훌륭한 음식을 만드는 데 각자 일조한다.  훌륭한 연설의 세 번째 요소는 `파토스`다. 그리스어 `파토스`는 `감동`이란 의미다. 감동이란 말하는 사람이 나의 고통과 염원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다가오는 북받치는 감정이다.  이준석은 `(현 정부가) 민주주의를 다수에 대한 독재, 견제받지 않는 위선이라는 야만으로 변질시켰다`고 평가했다. 그런 정치행태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파시즘이다. 소크라테스나 예수도 파시즘의 희생양이 됐다.  정치평론가들은 이준석이 제1야당의 대표가 된 것을 `이준석 현상`이라고 평가한다. 그들은 국민이 편 가르기와 줄서기에만 혈안이 된 정치인들에 신물이 나 이준석이라는 의외의 인물을 선택했다고 분석한다.  나는 동의할 수 없다. 이번 사건은 `이준석 현상`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새로운 인물인 `이준석의 등극`이다. 인류는 언제나 그 경계에 서서 외연을 용감하게 확장하는 `신인`을 통해 진보해 왔다.  로마 공화국 말년에 전통적인 귀족 집안 출신은 아니지만 원로원의 일원이 돼 치안감이나 집정관과 같이 최고 권력자로 등극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런 사람은 라틴어로 `호모 노우스`(homo novus)라고 부른다.  귀족 출신은 아니었지만 수사학, 철학을 공부해 원로원이 된 키케로나 고대 이스라엘의 촌 동네인 나사렛에 태어났지만 인류가 실천해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인 사랑을 전파한 예수도 `호모 노우스`였다.  이준석의 수락 연설은 정치 공학에 휘둘려 지리멸렬하는 대선주자들이나 정치에 대한 훈수를 두는 소위 `철학자들`의 억지보다 신선하다. 중진국 수준에서 정치에 발목이 잡혀 볼모가 된 대한민국이 선진국 대열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이준석과 같은 젊은 정치 신인들이 필요하다.  내년 대선에서 그런 정치 신인들의 토론과 연설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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