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주인인 시간은 저 도도히 흘러가버리는 한강 물처럼 이내 왔다 금방 사라져버린다. 시간은 매정하고 정의롭다. 시간은 그 누구도 기다려 주지 않는다. 지나가버린 시간은 지금이란 시점에서 보면 100년이나 하루나 매한가지다. 명성, 부, 혹은 권력이 나에게 영원을 선물해 주지는 못한다. 지혜로운 자는 이 순간을 포착해 영원으로 만드려고 시도하지만 어리석은 자는 순간을 무시해 자신도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흙으로 돌아간다. 인생이 5막인 줄 알았는데 3막으로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나간 시간은 사실 내가 살아온 날들이 아니다. 그날들은 아무런 변화를 일으킬 수 없는 `죽음`의 소유다. 내가 삶의 긍정적인 변화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은 어제도 아니고 내일도 아니다. 바로 지금이다. 지금은 나에게 주어진 유일무이한 시간이다. 인생의 성공은 오늘을 어떻게 선용하느냐에 달려있다. 어제의 습관에 젖어 오늘 과거의 습관을 반복한다면 그(녀)는 이미 죽은 사람이다. 만일 그가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며 오늘을 망친다면 그도 역시 죽은 자다.  이 시간의 아쉬움을 간절하게 표현한 로마 시대 정치가이자 철학자가 있다. 바로 세네카다. 그는 네로의 스승으로 당대 최고 권력에 올랐지만 네로의 명령으로 자살을 감행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그에게 정치가일 뿐만 아니라 문필가로서 명성을 선사한 것은 시칠리아의 행정장관인 루킬리우스에게 보낸 124편의 편지들이다. 이 글들의 형식은 편지이지만 실제로는 철학적 에세이다. 124편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 하나도 없다. 세네카는 편지형식을 빌어 자신의 철학을 세상에 널리 알렸다.  세네카의 첫 편지는 `시간선용`(時間善用)에 대한 내용이다. 시간은 만물의 존재 양식이다. 만물은 시간 안에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 첫 편지를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나의 친애하는 루킬리우스여! 이렇게 행동하십시오. 당신 스스로를 자유롭게 만드십시오. 당신만의 시간을 모아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준수하십시오. 시간은 지금까지 당신으로부터 강요되거나 강탈당했거나 슬그머니 빠져나간 것입니다. 상황이 그렇다는 것을 인정하십시오. 어떤 시간은 우리로부터 찢겨 나갔으며 어떤 시간은 도둑맞았고 어떤 시간은 흘러가 버렸습니다. 가장 수치스러운 손실은 소홀을 통해 이뤄진 것입니다. 진실로 당신이 일어나는 일들을 세심하게 살핀다면 (당신은 다음을 알아차릴 것입니다) 가장 많은 부분의 삶은 잘못해서, 대부분의 삶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냅니다. 인생 대부분이 목적도 없이 지나가 버립니다".  세네카는 우리가 흘려보낸 시간을 분석하며 가장 수치스러운 손실의 원인을 소홀에서 찾는다. 소홀은 자신이 귀중한 것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망각에서 시작한다.  이 망각이 무식이다. 만일 내가 소중한 것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더라고 최선을 경주하지 않는 것이 나태다. 그는 우리 대부분이 삶을 목적도 없이 남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세네카는 하루를 특별한 방식으로 정의한다. 하루는 `매일 죽기`(라틴어 `코티디에 모리`, cotidie mori)다. 그는 자신이 아침에 일어나 하루를 사는 것이 아니라 하루라는 인생을 살고 저녁에 죽는다고 여겼다.  지나온 세월은 내가 산 날이 아니라 죽음이 소유한 시간이다. 나에게 중요한 시간은 지금, 이 시간뿐이다. 세네카는 하루라는 시간을 선용하기 위해서 오늘을 인생의 마지막 날로 여기고 자신이 반드시 해야 할 그 한 가지에 몰입하라고 충고한다. 우리에게 불행은 그 한 가지를 잘 모른다는 사실이며 알더라도 그것을 대충 처리하는 소홀이다. 나는 하루를 선용하고 있는가? 나는 `매일 죽기`의 심정으로 내가 해야 할 임무에 몰입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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