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 장기화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무차별 관세, 국내 정치 불안 등 경영 환경이 악화하면서 싼값에 실무능력이 검증된 경력직을 고용하려는 기조가 더 뚜렷해졌다. 반면 신입의 취업 문은 3년래 가장 좁아졌다.
업계에 따르면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최근 100인 이상 기업 50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올해 신규 채용 계획을 수립한 기업은 60.8%로 나타났다. 지난 2022년 조사 이후 최저치다. 기업들의 신규 채용 계획 응답률은 2022년 72.0%였으나 이듬해인 2023년 69.8%로 낮아졌고 올해는 9%포인트(p) 더 줄었다.
반면 중고신입 채용이 크게 늘고 있다. 경총 조사에서 신입 공채 때 `직무 관련 업무 경험`을 가장 중요한 평가 요소로 본다는 응답은 무려 81.6%에 달했다. 이런 경향은 최근 3년(2023년 58.4%→2024년 74.6%→2025년 81.6%)간 가파르게 늘고 있다. 실제 한경협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대졸 신규 입사자 4명 중 1명(25.7%)이 중고신입이었다.
중고신입 혹은 주니어 경력직 채용은 인공지능(AI)·반도체 등 첨단산업에서 유독 활발하다. 전 세계적으로 AI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인력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었지만 전문성을 가진 AI 인재는 태부족한 탓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신입·경력 채용을 7차례 진행했는데 이중 경력 2~4년 차 경력을 뽑는 `주니어 탤런트`를 포함한 경력직 채용은 4번이었다. 수백명 모집에 1000명 넘게 몰렸다고 한다. 삼성전자도 2023년부터 경력 채용 대상을 4년 이상에서 2년 이상으로 풀을 확대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2~10년 차 경력을 뽑는 `퓨처 엘리트`를 지난해 신설했다.
중고신입이 각광받는 건 회사와 근로자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회사는 즉시 실무에 투입할 수 있는 경력직을 신입 연봉에 고용할 수 있고, `평생직장` 개념이 없는 젊은 직장인들은 더 나은 처우를 제공하는 기업으로 `점프`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결국 실무 경험 없이 취업 시장에 발을 디딘 `순수 취준생`의 설 자리는 더 좁아진다.
업계는 취업 한파가 더 거세질 것으로 보고 있다. 경총 조사에 따르면 올해 경제위기가 올 수 있다고 판단하는 기업은 96.9%에 달했다. 지난 1997년 외환위기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는 전망도 22.8%로 높았다. 허리띠를 졸라맨 기업들이 신입 채용부터 줄이면서 문과보다 상황이 나은 것으로 알려진 공대생 출신들도 취업에 애를 먹는 실정이다.
이에 취준생들은 실무 경험을 쌓을 수 있고 채용 우대까지 받을 수 있는 각 기업의 전문가 육성 프로그램에 몰리고 있다.
삼성은 1년간 매일 8시간씩 1600시간의 집중 교육을 통해 실무 역량을 갖춘 개발자를 육성하는 `삼성청년소프트웨어아카데미`(SSAFY)를 운영 중이다. 1~10기 수료생 8000명 중 6700명(84%)이 취업에 성공했다. SSAFY 수료생은 채용에서 우대하는 기업도 170여곳에 달한다.
LG는 청년 AI 전문가 육성 프로그램 `LG 에이머스(Aimers)` 운영 중이다. LG 에이머스는 크게 AI 이론 교육과 해커톤으로 구성되는데 AI 해커톤은 타 프로그램과 달리 LG 계열사의 실제 현업 데이터를 활용해 AI 모델을 개발할 수 있어 인기다. SK하이닉스도 반도체 직무 경험 제공 프로그램 `청년 하이포(HY-Po)`를 운영하고 있다.
이처럼 중고신입의 몸값은 날로 뛰고 신입 취업 문은 3년래 가장 좁아져 취업 준비생들의 고심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