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문인 서화가들은 자연을 관조하고 사색을 통해서 감동을 주는 그림들을 그렸다.
유(儒), 불(佛), 도(道) 등 삼교의 영향 아래 자연을 통한 융화와도 큰 연관이 있다. 불교 미술에서 보여주듯 화조화의 영향이 초기 문인화가들의 의식에 반영되고 당, 송대를 거치면서 명대 사대부들에 의해 화훼화가 크게 유행했으며 사군자와 화훼가 함께 등장하는 영역의 변화가 일어난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은 심주(1427~1509년)의 `사계화훼도`에서 진순(1483~1544년)의 `화훼도`를 보면 두루마리 형식의 그림의 연결 방식을 통해 표현된다.
서위(1521~1593년)의 `사시회훼도`, `화훼잡화도`의 화훼도권(花卉圖卷)으로 이어졌다.
서위는 "손 끝의 용필(用筆)은 천둥과 같다"며 화훼화에 그의 자연관이 담긴 두루마리 그림의 새 장을 열었다.
왕세정이 남긴 진순의 평에서 "진순은 묘(妙)하지만 진(眞)하지 않다"라고 했으며 화법(畵法) 근간에 서법(書法)이 도도하게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