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근무하는 국립신암선열공원은 사계절 중에도 가을이 특히 아름다운 곳이다. 　낙엽이 지는 공원을 산책하다보면 이곳이 전국 유일의 독립유공자 전용 국립묘지라는 거창함보다 고요한 분위기에 마음이 편안해지고 잘 단장된 봉분이 아무런 이질감없이 어우러지는 풍경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국립신암선열공원이 가지는 상징성 때문에 국가기념일이나 기관장 이·취임식, 기타 특별한 날이면 참배를 오시는 분들이 많고 그 외에도 다양한 행사가 열리지만 그 중에서도 11월 17일 순국선열의 날 참배는 생각이 많아지는 행사다. 　순국선열의 날이 정해진 유래는 지난 193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39년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우리나라의 국권이 침탈당한 을사늑약이 강제 체결된 1905년 11월 17일을 `순국선열공동기념일`로 제정했으며 광복 후 광복회 등의 민간단체와 국가보훈부가 주관해 추모행사를 거행해 오다 1997년 정부기념일로 제정된 것이 순국선열의 날의 유래이다. 　우리나라 역사를 돌이켜보면 안쓰러울 정도로 수없이 많은 외세의 침략이 있었고 이에 맞서 온 백성이 한마음 한뜻으로 나라를 지킨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지만 강제병합이 있었던 지난 1910년부터 1945년 광복에 이르기까지 무려 36년의 일제강점기는 `독립`을 상상하기조차 힘든 암흑기였다. 　하지만 그러한 때에도 독립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온전히 바쳐 나라를 되찾아주신 순국선열들이 계셨기에 미약한 불씨가 온 나라에 번져 마침내 일제의 폭압을 불사르고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태어나는 희망과 번영의 불이 타오르게 됐다. 　당시 순국선열들의 희생과 헌신은 차마 글로 옮길 수도 없는 엄혹한 것이었다.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옥고를 치르다 순국하신 분들이 계신가하면 지금으로 환산하면 대기업 규모의 재산을 가졌던 분이 전 재산을 독립자금으로 바치고 본인과 자녀들이 아사(餓死)한 분도 계셨다. 정든 고향을 떠나 남의 나라에 임시정부를 세우고 독립운동을 하면서는 먹는 날보다 굶는 날이 더 많았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그러한 모진 세월을 견디고 마침내 광복을 맞이했으나 기쁨도 잠시 6·25전쟁과 분단 조국이라는 비극을 겪으며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리라고 모두가 단언하던 폐허에서도 밤낮없이 노력해 이제 세계에 이름을 떨치는 선진국이 됐으니 그 저력의 근간에는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이 보여주신 불굴의 투지와 헌신이 있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2024년 11월 17일은 제85회 순국선열의 날이다. 　최소한 이날 하루만이라도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번영이 얼마나 숭고한 희생과 헌신 위에 세워진 것인지 생각해보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치신 순국선열들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또한 그분들의 공훈을 기리고 더욱 발전된 대한민국을 가꾸어 나가기로 다짐하며 그 정신을 자라나는 후손들에게 전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