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구속취소로 석방되고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이 야당 기대보다 지연될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은 서울 광화문광장에 `천막 당사`를 차린 듯하다.
천막을 여러 개 쳐놓고 거기서 여러 업무와 일정을 소화한다. 의원들은 삭발과 단식을 결행하며 민주노총을 비롯한 좌파 시민사회 단체 시위를 부추긴다.
압도적 의석으로 국회를 마음대로 하던 야당이 국회를 박차고 나온 것은 `조기 탄핵`을 겁박하고 기각될 경우에는 불복하고 `비법률적 투쟁`에 나서자는 선동으로 비친다.
국회는 텅비고 거리와 광장만 북적인다. 정치인들은 본회의장 대신 광화문에서 마이크를 잡고 열변을 토한다. 표정과 어투는 나라를 잃은 듯 비장하다. 여당은 헌법재판소 앞을 자주 찾는다. 헌재를 한 바퀴 감싸돌며 `윤석열 대통령 탄핵 각하`라고 목청을 돋운다.
주말에도 쉼이 없다. 야당은 윤 대통령 탄핵 선고때까지 매일 도보행진을 하기로 했다. 삭발과 단식, 집회 참여 등 투쟁을 상징하는 모든 단어들을 현실로 치환할 태세이다.
항거의 `마지막 수단`으로 인식되던 단식과 거리 행진은 한때 죽음마저 각오하는 결의의 상징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시민들은 무덤덤해졌다. 독재·권위주의에 맞선 목숨 건 투쟁이 어느새 정쟁으로 변질된 탓이다. 배고픔의 무서움을 아는 세대들조차 단식에 냉소적이다. 최루탄도 투석전도 사라진 평평한 보도블록 위 경찰 호위를 받으며 유튜브 생중계 눈치만 보는 행진에서 절박감을 느끼긴 요원하다.
작금의 광장 정치는 그 의미가 사뭇 다르다. 소통의 장이 아닌 정치 세력 간 대결과 분열의 싸움터로 변질됐다. 상대를 설득하려는 토론과 연설은 사라지고 세 과시와 극단의 언어를 쏟아내는 폭력적 공간이 됐다.
내 편, 네 편 갈라진 대중들은 광장에서 증오의 언어를 던지기에 주저함이 없다. 정치인들은 이를 더욱 선동하고 이용한다. 갈등의 골은 하루하루 더 깊게 패인다.
정치에서 여야 간 다툼과 경쟁은 필연적이다. 하지만 그 싸움은 국회로 상징되는 토론장과 협상 테이블 위에서 벌어져야 한다. 거리에서 벌이는 일방적 선동은 독재 시대와 달리 그 진정성을 증명하기 힘들다.
외려 정치 본연의 역할과 기능이 망가졌음을 보여주는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지금은 1972년도, 1986년도 아닌 2025년이지 않나. 여야 정치인들은 광장에서 벗어나 국회로 돌아가길 바란다.
열쇠 반쪽씩 나눠가진 협상장 문을 걸어잠그고 치열하게 토론·논쟁하는 `진짜 정치` 모습을 보여주길 소망한다. 카메라·유튜브를 의식한 매표 쇼의 무대로 광장을 망가뜨려선 안 된다.
정치가 광장에 머무르면 그 어떤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 과거의 광장은 기득권에 맞서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던 시민들이 마지막으로 기댄 공간이었다. 삼삼오오 소통하며 위정자들에게 마지막 호소, 그리고 경고음을 내던 민주주의의 장(場)으로서 기능했다.
정치인이 주인공인 무대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