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대의 문인화가들은 송대 사군자와 화조화가 가지는 지성과 우아하고 격조 있는 예술의 숲을 지긋이 바라봤을 것이다.
북송(960~1127년)의 자연 관찰을 통한 사군자, 화조화의 생태적 표현 노력은 북송의 문인화가와 화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역사는 성(盛)하면 쇠(衰)하는 순환의 과정에서 사실성을 가진 화려한 채색과 대비되는 삼송(1127~1279년)의 시대적 환경에서 변화의 물결을 볼 수 있다.
남송 초기 북송의 멸망으로 무역을 활성화해 경제력을 회복했다.
영종(寧宗, 1196~1223년) 시기 화조화에는 거칠고도 단순하며 자유로운 담채 수묵화의 붓의 운치가 담겨있다.
북송대에 볼 수 없었던 이 화면의 변화는 때 불교 선종(禪宗)의 영향으로 형(形)보다 이(理)를 추구함에 따라 남당(南唐) 시기 서희의 야일화(野一畵)가 화풍을 이루게 했다.
마원(馬遠), 마린(馬麟) 부자가 선두적인 역할을 하면서 남송의 시대상이 반영됐음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