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C 명 말기 봉건 전제 군주시기의 사회적 구조를 형성하는 계급제도는 문인화가와 직업화가 간의 갈등을 야기시켰다.  문인사대부의 증가와 결속은 계급 구조의 위치를 단단하게 유지하게 했으며 문인화가들의 사상(思想)과 예술정신으로 직업화가들을 차별하는 풍조는 이 당시 화단의 일반적인 흐름이었다.  이 시기 직업화가들의 출신이 대체적으로 낮고 미천했다.  학식과 그림 표현 영역에서 용필(用筆)이 부족하고 표현의 장식성은 그림의 격을 낮췄으며 창의성이 떨어지는 현상들이 발생해 문인화가들의 논쟁을 받게 됐다.  사회적 계급 인식에 대한 반향은 매우 크게 작용했으며 그로 인해 미술시장 경제의 흐름에 낙오하지 않기 위한 직업화가들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선대의 유명 화가의 작품을 학습하고 문인 사대부의 그림을 익히기도 했다.  명 말기 문인의 위치가 가치를 인정받게 됐으며 전통 고수와 품격 있는 예술적 경향이 창의적 흐름이었다.  매(梅), 난(蘭), 국(菊), 죽(竹) 사군자의 소재가 송(宋), 원(元)대에 비해 단독으로 그려지던 사군자의 표현이 자연 속에서 일부분으로 존재하는 회화적 표현으로 자리 잡은 큰 변화의 시기였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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