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고금리 등 높은 인플레이션이 지속하면서 하반기 전기요금 인상에 대한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는 모습이다.
대외적으로 중동발 전쟁 확산 우려가 높아지면서 국제유가 인상으로 인한 전기요금 현실화 명분은 더 뚜렷해졌지만 물가지수나 서민가계 부담을 고려하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다.
그렇다고 전기요금을 또 인위적으로 통제한다면 3년간 누적 적자액 34조원 총 누적부채 202조원에 허덕이는 한국전력공사의 재정압박도 한계치에 몰릴 수 있는 만큼 무엇 하나 쉽게 결정할 수 없는 문제다.
최근 정부와 한전, 에너지업계 등에 따르면 정부는 고물가·고금리·고환율 파고 속 전기요금 등 공공요금 인상을 억제하기 위한 전방위 작업에 착수했다.
4·10 총선 후에는 하반기 전기요금 인상을 단행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지만 이달 들어 중동발 전쟁 위기 확산, 환율 급등 등으로 물가에 비상이 걸리면서 서민가계 안정을 위한 공공요금 `동결`에 무게 중심이 더 기운 것으로 보인다.
전기요금은 매분기(3·6·9·12월)마다 발표하는데 한전이 생산원가 등을 반영한 연료비조정단가를 산업부에 제출하면 기재부와 협의를 거쳐 결정하는 구조다. 정부는 총선을 앞둔 직전 4개 분기동안 `동결`을 이어오고 있는 상태다.
이 같은 판단에는 국내 고물가 상황이 직접 영향을 끼친 것으로 읽힌다. 지난 2월에 이어 3월에도 소비자물가지수가 3%대(3.1%) 상승 폭을 보이면서 재정당국은 물가관리 총력전에 나선 상황이다.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도 치솟으며 우리나라 금리인하 시점도 재조정 국면이고, 환율과 수출 영향 대책 마련에 재정당국의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서민가계 부담을 우려한 기재부는 유류세 인하 조치를 올 상반기까지 재연장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계속 `동결` 기조를 이어가기에는 한전의 상황이 녹록지 않다.
한전은 지난 2022년 4월 이후 지난해까지 전기요금 현실화를 내건 정부 기조에 힘입어 다섯 차례에 걸쳐 40%가량 전기요금을 인상, 지난 18개월간 이어진 역마진 구조를 해소하면서 지난해 5월부터 겨우 흑자 구조로 전환한 상태다. 물론 지난해 3분기부터 4개 분기 연속 다시 요금을 `동결`하긴 했지만 이전까지 올린 요금인상분에 더해 안정세에 접어든 국제유가 영향으로 흑자 유지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여기에는 안정을 되찾은 국제 에너지연료 가격이 있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에 널뛰기했던 국제유가는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안정을 찾았고 이 기간은 한전이 영업 흑자로 전환한 것과 그 시점을 같이한다. 하지만 또다시 중동발 전쟁이 발발하면서 국제유가는 널뛰기할 조짐이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배럴당 70달러대까지 떨어졌던 국제유가 가격은 올 들어 상승세로 전환해 배럴당 90달러대까지 치솟았다.
한전은 이미 79조6000억원의 한전채를 한도까지 발행했다. 이것도 모자라 최근에는 자회사들로부터 3조2000억원의 중간배당을 받아 한전채 신규 발행 한도를 조금 늘렸지만 회사채 발행 한도는 한계치에 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전은 전기요금 인상이 절실하지만, 정부는 신중한 입장이다.
물가당국 수장인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발언에서 현 정부의 분위기가 묻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