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문화의 발달과 예술과 기술의 융합은 명대 회화사를 앞당겼다. 문인들은 매(梅), 죽(竹)을 시대적으로 격조 있는 흥취로 많이 그렸다.
남송대(12C) 난(蘭)이 대량 재배되면서 생활에서 많이 접하게 되고 화분에 난이 관상되면서 난(蘭)화가 많이 애호됐다.
사군자 중에서 국화(菊)의 그림이 상대적으로 적게 그려졌다. 강남 일대의 소주, 절강, 강소 등의 정원 문화의 확대와 유입된 외래식물 화초들의 조성과 함께 소박하고 향기를 머금고 있는 국화가 재조명되면서 애호되고 그려졌다.
중국 고대로부터 이어져 오던 풍속과 차(茶) 문화를 보면 화차(花茶) 중에서도 국화차가 문인 사대부와 서민들에게 향기와 미각으로 애호돼 현재 국화는 중국인들에게 대중화된 꽃이다.
명대 양명학과 주자학의 철학사상에서 국화는 문인들의 시각으로 격조 있게 피어난다. 서위(徐渭, 1521~1593년), 손극흥, 왕탁, 진순 등이 국화를 잘 그렸으며 시(詩), 서(書), 화(畵)에 뛰어난 서위의 묵국화는 고단한 삶을 살았던 세상에 대한 사색, 초연함 등이 서정성으로 여운을 담아 그려졌다. 심주, 문징명보다 우위에 있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명대 말 서위의 독특한 예술세계에 우리도 함께 공감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