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의대증원 방침에 반발해 병원을 이탈한 전공의에 이어 의대 교수들마저 업무 과중을 이유로 진료 축소에 나서면서 환자들의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반드시 유지돼야 할 응급실도 일부 질환 진료가 어려워지는 등 운영상 차질을 빚고 있다. 현장에서는 이러다가 환자도 의료진도 모두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하고 있다.
지난 8일 정부에 따르면 5일 기준 중앙응급의료센터 종합상황판에 안과, 산부인과 등 일부 중증 응급질환 진료 제한 메시지를 표출한 기관은 총 16개소다. 정부는 응급환자 이송과 전원에 차질이 없도록 면밀하게 모니터링한다는 방침이지만 의료현장은 하루하루 간신히 버틴다는 입장이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 소속 의료진들로 구성된 응급의학과 비상대책위원회는 전날(7일) 성명서를 내고 "500여명의 응급의학과 전공의가 응급실을 나갔으며, 대부분의 수련병원이 응급실을 축소 운영하고 있다. 심각한 위기 상황을 하루하루 간신히 버티고 있다"고 주장했다.
응급의학과 비대위는 또 남아있는 의료진들의 피로와 탈진은 한계에 다다르고 있고 교수들의 업무 단축은 앞으로 상황은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면서 의대증원을 포함한 모든 의제를 백지화하고 의료계를 존중하는 마음을 담아 진지한 협상에 임하라고 촉구했다.
이형민 응급의학과 비대위원장은 중증 응급질환 진료 제한 메시지를 표출한 기관이 늘고 있다면서 "응급실 자체 능력 저하도 있고, 배후 진료·최종 진료의 저하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환자를 치료 가능한 병원으로 보내는 일 자체가 이전에 비해 너무 힘들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 등 의대교수 단체들은 사태가 길어지면서 교수진의 피로도는 극에 달했다며 법정 근로시간인 주 52시간에 맞춰 업무를 일해야만 환자도 보호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전의비가 현 의료사태 기간 7개 의대 수련병원 교수 1654명에 대해 근무시간을 조사한 결과 주당 72시간 이상 근무한다는 비율은 대학별 응답자의 40.4~59%를, 100시간 초과 근무는 6.4%~16%를 차지했다. 주당 40~52시간 근무 비율은 8.3~15%에 불과했다.
야간 당직 포함 24시간 연속 근무 후 주간에 휴게가 보장되지 않는 경우도 대학별로 81.6~98.8%로 모든 병원에서 대부분의 교수가 야간당직 후에도 다음날 외래와 수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전의비는 대학들에 24시간 연속 근무 후 주간 업무 오프(휴무)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환자단체는 교수들의 진료단축을 크게 우려하며 사태 해결을 위한 정부와 의료계의 전향적인 자세를 요구하고 나섰다.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는 지난 5일 "의정갈등이 더욱 깊어지고 있음에 유감"이라며 빅5 병원장에게 환자 치료받을 권리 보장을 요청하는 호소문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한국중증질환연합회도 전날 성명을 내 "중증 환자 생명까지 위협받는 상황이 지속되고 환자들은 `의료 난민`으로 전락했다"며 "세계보건기구(WHO)가 한국 의료대란과 관련해 국제기구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다룰 수 있도록 요청하겠다. 종교계에도 함께 해주기를 간곡히 요청한다"고 발표했다.
환자 목숨을 볼모로 한 집단행동은 바람직하지 않다. 여러 의료계 단체들이 모인다면 정부와도 함께 자리해 생산적인 토론이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