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정상이 금융·외환 부문의 협력 증진을 언급하면서 8년 동안 중단된 한일 통화스와프에 대한 논의가 재개될지 이목이 집중된다.
지금은 미국의 빠른 통화 긴축으로 글로벌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극에 달한 시기다.
과거보단 통화스와프 체결의 이점이 커졌다고 볼 수 있다.
20일 정부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6일 도쿄 총리관저에서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고 "양국의 풍요로운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경제 안보와 첨단 과학뿐만 아니라 금융·외환 분야에서도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민해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통화스와프는 타국 중앙은행끼리 일정 기간 유사 시 자국 통화를 서로에게 빌려주기로 하는 계약을 뜻한다. 주로 금융시장 변동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외환 조달을 용이하게 하면서 시장 내 불안 심리를 잠재우는 역할을 한다.
급격한 외환 변동에 대비하는 일종의 보험 격이다.
한일 통화스와프는 지난 2001년 7월에 20억달러 규모로 체결돼 규모가 지속적으로 늘어 2011년 말엔 잔액이 700억달러 수준에 달했다. 하지만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양국 간 분위기가 냉각되면서 규모가 줄기 시작했다.
통화스와프를 바라보는 일본의 시선은 경제적인 타산보다는 정치에 가까웠다.
급기야 일본 측은 통화스와프를 연장해 줄 순 있지만 한국이 먼저 요청하는 수순을 밟으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는 우리나라가 꼬리를 내리면 협정을 연장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중단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결국 지난 2015년 2월 100억달러 규모의 계약이 만기를 맞으면서 한일 통화스와프는 종료됐다. 2016년 정부는 미국 금리 인상과 브렉시트 등으로 일본에 재연장을 요청했으나 일본 측이 거절했다.
이에 우리 정부는 양국 간 정치 문제가 풀려야만 한일 통화스와프 협상이 재개될 수 있다는 입장을 비쳐 왔다. 역으로 말하면 이번 한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통화스와프 재개 논의가 점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다만 정상회담 이후 양측 외환 당국 간 통화스와프에 관한 구체적 논의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은 당분간 공식 루트보다는 물밑 논의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현재 우리나라의 외환 안정 상황은 통화스와프가 절실하다고 볼 수 없다.
지난 2월 말 기준 우리나라 외환 보유액은 4252억9000만달러에 달했다.
현재 환율로 약 558조원에 육박한다.
세계적으로는 지난 1월 말 기준 세계 9위의 외환 보유국이다.
이에 우리 당국은 한일 통화스와프 체결을 긴급한 사안으로 보진 않는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한일 양국은 윤석열 대통령의 방일을 계기로 관계 회복 논의를 이어가면서 통상·무역 회복에 더욱 집중하는 모습이다.
일본은 반도체 핵심 소재 3개 품목에 대한 수출 규제를 3년 반 만에 해제했다.
양국은 향후 상호 `화이트리스트`(수출 심사 우대국) 원상 회복에 관한 협의에도 돌입할 전망이다. 하지만 한일 통화스와프가 체결됐을 때 금융·외환시장에 주는 안정감을 무시할 수는 없다. 엔화는 이미 국제화가 이뤄진 기축통화로 평가된다.
최근 미국의 가파른 통화 긴축으로 글로벌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진 와중에 안정적인 엔화 확보는 환율 안정에 도움이 될 전망이다.
게다가 최근 일본 중앙은행이 통화정책 변경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한국 내 일본계 자금의 이탈 우려 또한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직전인 지난 1997년 일본계 자금이 가장 빠르게 빠져나가면서 위기를 맞았던 경험이 있기에 한일 통화스와프 복원은 혹시 모를 위기 조짐에 대한 안전판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우리 원화는 결제 비율이 매우 낮고 무역 의존도도 높은 만큼 언제든지 다시 외환위기를 맞을 수 있어 한일 통화스와프 체결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