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의 연주를 객석에서 감상하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다. 공연장이 대형 콘서트홀이 아닌 실내악 전용홀일 경우에는 더 그렇다. 연주자가 피아니스트라면 미세한 근육의 떨림에서 머리칼의 흔들림까지 집중하지 않을 수 없다. 커튼콜 때 관객과 함께 박수를 보내며 `내가 저런 사람을 알고 있다니`라는 생각에 뿌듯해진다.
지난 2월 말 서울 서초구 페리지홀에서 `피아노4중주 율(Yul)`의 연주회가 있었다. 나는 피아니스트 이혜은씨와 친분이 있는 여러 명과 함께 객석에 앉았다.
이날 `피아노4중주 율`이 연주한 곡은 △구스타프 말러의 `피아노4중주 A단조`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피아노4중주 1번 G단조` △요하네스 브람스의 `피아노 4중주 1번 G단조` 등 모두 3곡이다.
이 공연에서 감동을 받은 순서는 브람스 `모차르트` 말러였다. 팸플릿에는 브람스의 `피아노4중주 1번 G단조`에 대해 다음과 같은 해설을 달아놓았다. `이 곡은 지난 1856년~1861년 사이에 작곡됐고 1861년에 함부르크에서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인 클라라 슈만에 의해 초연됐다. 그리고 1862년에는 브람스 본인에 의해 오스트리아 빈에서 연주됐다…`.
이 해설에서 눈길이 고정된 대목은 `브람스 곡을 클라라 슈만이 초연했다`는 사실이다.
지난 1861년이면 로베르트 슈만이 죽은 지 5년이 지난 시점.
클라라 슈만의 연주를 객석에서 지켜보는 브람스를 상상해 본다.
작곡가는 내면의 감정을 음표로 오선지에 그리는 사람이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4중주에서는 밝고 경쾌함에 마음이 들떴다.
그러나 브람스의 곡이 연주되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사랑하는 여인을 향한 남자의 격정이 전해져왔다. 타오르는 사랑의 감정이 피아노 선율을 타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신을 휘감았다. 어느 순간 사랑의 환희가 사랑의 비애로 바뀌어 마음이 무거워졌다.
지난 2월 17일~18일 서울 대학로예술극장에서 특별한 발레극이 올려졌다.
서울발레시어터의 제임스 전이 안무한 신작 발레 `클라라 슈만`.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클라라 슈만이 주인공이다.
로베르트 슈만의 아내이자 자녀 8명을 키우는 어머니 그리고 직업 연주자로서의 모습을 그려냈다.
안무가 제임스 전은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클라라 슈만의 강인한 삶에 끌렸다"고 말했다.
클라라 슈만(1819년~1896년). 로베르트 슈만(1810년~1856년)의 아내이면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클라라를 조명하는 관점은 두가지다.
남편 로베르트 못지않은 뛰어난 실력을 갖췄음에도 시대를 잘못 만나서 여자라는 이유로 재능을 다 꽃피우지 못한 채 사라져갔다는 사실이다. 음악가로 죽지 못한 클라라의 마지막이 애잔했다.
다른 하나는 작곡가 요하네스 브람스(1833년~1897년)의 구애를 받으면서도 브람스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독일이 사랑한 천재들`에 들어가는 인물이 리하르트 바그너다. 그 바그너를 연구하는 여정에서 뜻밖에도 클라라와 조우했다.
지난 1849년 작센 왕국의 수도 드레스덴에서 무장봉기가 일어난다. 폭력혁명가 바쿠닌이 주동한 무장 폭동이었다.
바쿠닌의 선동에 넘어간 몇몇 예술가들이 봉기에 직간접으로 가담했다. 그중 한 명이 드레스덴 궁정악장인 바그너.
그때 슈만 부부 역시 드레스덴에 살고 있었다. 대부분의 무장봉기가 그렇듯 초반은 기세가 좋아 정부군에 타격을 주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무장봉기는 시간이 흐를수록 동력을 잃고 실패로 끝나곤 한다.
로베르트도 초기에 무장봉기에 가담하려 했으나 클라라가 말렸다.
클라라는 봉기는 실패할 수밖에 없고 가담자들은 모두 죽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
클라라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로베르트를 피신시켜 목숨을 구했다.
클라라는 무장봉기의 진행 상황을 일지 형태로 기록하기도 했다.
클라라가 음악적 능력뿐 아니라 상황 판단력도 얼마나 뛰어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화다.
지난 2021년 5월 20일 자에 `클라라 슈만`을 잠깐 언급했다.
여기서는 여성 차별의 관점에서 클라라를 조명했다.
클라라는 로베르트의 스승인 프리드리히 비크 교수의 딸이었다.
클라라는 어려서부터 음악에 재능을 보였고 열살에 피아니스트로 데뷔한다.
열한살 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서유럽 연주 여행을 다녔다.
파리에서는 파가니니와 협연을 했고 쇼팽의 극찬을 받았다.
프라하에서도 단독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클라라는 작곡에도 소질을 드러냈다.
열일곱살에 쓴 곡을 멘델스존이 연주를 했다. 여기까지는 모차르트의 이력과 별 차이가 없다.
지난 1840년 클라라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로베르트와 결혼한다.
그때 로베르트는 무명이었다.
클라라는 남편을 성공시키기 위해 헌신했고 로베르트는 아내의 지지를 받으며 작품들을 쏟아냈다. 클라라는 8남매를 키우는 틈틈이 연주 활동을 병행했다.
결혼생활 14년 동안 클라라는 아내, 엄마, 연주자로서 1인 3역을 맡았다.
작곡은 거의 하지 못했다.
1854년 남편이 정신병에 걸리면서 결혼생활은 사실상 끝이 났다.
2년 뒤 남편이 죽고 나서 클라라는 가장 역할까지 짊어져야 했다.
발레극 `클라라 슈만`은 슈만 부부와 브람스의 관계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천재 음악가 부부로 갈채를 받던 1853년 어느 날 스무살 청년 브람스를 소개받는다.
부부는 청년의 재능을 알아보고 브람스의 성공을 물심으로 돕는다.
음악가 부부와 청년 음악가는 음악으로 삼위일체가 된다. 하지만 브람스는 어느 순간 클라라에게 마음이 끌린다.
브람스가 마음속으로 클라라를 사랑하게 되면서 피라미드 같던 세사람의 관계에 조금씩 금이 간다.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브람스의 괴로움은 깊어만 간다.
정신병원에서 아내의 품에 안겨 눈을 감은 로베르트. 남편과 사별하고 힘들어하는 클라라.
브람스는 그런 클라라 곁을 지키며 제자로서 온갖 집안일까지 대신한다.
그러면서 하염없이 기다린다.
하지만 클라라는 브람스가 내민 손을 끝내 잡지 않는다.
홀몸으로 아이들을 키우며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면서도 말이다.
열네살 어린 제자라는 게 마음에 걸렸던 것일까. 브람스는 클라라를 연모하며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페리지(perigee)는 달이나 행성이 지구에 가까워지는 근지점(近地點)을 뜻한다.
클라라와 브람스는 다른 궤도를 돌다 근지점에서 잠깐 스치고 지나가는 운명이었을까.
그날 밤 브람스의 비련(悲戀)이 피아노 선율을 타고 페리지홀을 휘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