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한 원로 변호사님이 말씀하시기를 변호사는 고객 회사에 가면 누구 연결로 왔는지에 따라 대우가 정해진다는 것이다.  회장님이 모셔 왔으면 회사 정문에서부터 회장 대우를 받고 부장이 연결해서 오면 부장 대우를 받는다.  변호사 자신 고유의 위치(나이, 학교 등)나 성가는 보충적이다.  부장으로 있는 후배 소개로 회사와 인연을 맺으면 시간이 지나고 아무리 회사에 중요한 변호사가 돼도 이상하게 사장급들과 친해지지 않는다.  교수도 비슷한 듯하다.  실무자가 검색으로 나를 찾아내 섭외해서 회사나 단체에 강연하러 가면 그냥 `실무적인` 대접을 받게 된다.  교통편은 물론 내 차나 택시로 가고 도착하면 그냥 로비에서 대기하는 등.  반대로 회장님이 지시해서 `모셔지면` 의전차량이 달려오고 회사에 도착하면 최소한 사장이 나와서 영접하고 강연 전에 차 한잔 같이 하는 등이다. 내 차로 가더라도 주차 자리가 달라진다.  언젠가 회장과 친분이 있는 회사의 실무진으로부터 강연을 부탁하는 연락이 왔다.  그러려니 하고 흔쾌히 수락.  그런데 그냥 수락하면 될 것을 무심코 "회장님도 잘 알고…"라는 쓸데없는 사족을 붙였다.  며칠 후에 다시 연락이 왔는데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라며 강연이 취소됐단다.  아마도 그 직원은 끙끙 앓다가 유일한 탈출구로 그 방법을 찾았을 것 같다.  무리수지만 차라리 그게 낫다고 판단한 듯하다. 교수가 강연하러 가는 것이지 의전 받으러 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다지 개의치 않고 살았는데 이제 연차가 꽤 되니까 어떤 곳, 어떤 경우는 슬슬 싫어진다.  그래서 이제는 학교 안에서만(타 단과 대학) 강연을 하는 것으로 원칙을 정했다.  누가 인생 결국 `돈 아니면 의전`이라고 했는데 맞는 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조금씩 든다.  지금은 달라졌는지 모르겠는데 과거 서울대학교에서는 교수가 업무로 해외 출장을 갈 때 직급별로 비행기 좌석이 달랐다.  일종의 의전이다. 정교수인지 부교수인지 등이 기준이었기 때문이다.  동료 교수들이 같이 길을 나서지만 탑승 시에는 각기 다른 칸으로 헤어지는 어색함이 있었다.  서구 대학들의 경우 그런 식으로 직급별 차등 대우를 하는 경우는 못 봤고 비행시간이 기준이 된다. 개별적으로 나이가 반영되기도 한다.  그런데 동양권에서는 모두 우리와 유사한 의전 규칙이 통용되는 모양인지 언젠가 일본, 중국 교수들과 함께 심포지엄을 하기 위해 서울에 모였는데 자기들도 정교수, 부교수 등 직급별로 비행기 좌석이 달라진다고 했다.  그러면 나뉘어서 왔는지 물었더니 두나라 다 모두 같은 캐빈에 앉아서 왔다는 답이 돌아왔다.  일본 교수들은 인솔한 학장이 능력을 발휘해서 모두 비즈니스석으로 옮겼다. 중국 교수들은 학장이 그냥 이코노미석에 같이 앉아 왔다고 했다.  나라별로 리더십의 형태가 다른 점을 확인했다. 일상에서 가장 흔한 의전 문제는 아마도 자리 배치일 것이다.  모임의 성격에 따라 `서열` 나이 등 모든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참석자들은 미리 준비된 행사가 아닌 이상 순간적으로 판단해서 잘 행동해야 한다.  쉽지 않다. 행사의 경우 준비하는 사람들이 애를 먹는다.  예컨대 서로 불편한 참석자 두사람이 나란히 앉는 것이 최악인데 알기 어렵다.  자동차 좌석 의전은 한수 위다.  기사 외 세사람이 앉는 방식에 견적이 나오지 않으면 같이 타지 않는 것이 좋다.  나보다 연배가 위인 차주가 내가 교수라고 상석을 강권해서 가시방석으로 타고 간 적이 있는가 하면 자기 차라고 해서 그런지 버젓이 상석에 앉아 가는 후배도 있었다.  학생들한테 저녁을 사주기로 했는데 가장 늦게 도착해 보니 룸 안 테이블의 맨 끝 문가 자리만 비어있는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고난도 문제다. 이상한 격식에 집착하는 고루한 교수님이 되지 않기 위해 제자들이 나중에 어디서 크게 혼이 나고 배우도록 그냥 넘어가는 것이 맞는지.  위키피디아는 의전은 사람들이 서로 공생하고 협동하는 것을 쉽게 해주는 오래된 규칙이라고 한다. 나라 간 외교에서 의전이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이유다.  그런데 일상에서는 그냥 매너나 에티켓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하면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골프 치는 사람들이 가장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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