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거와 피자 등 외식 물가는 물론 생필품 가격도 모조리 올랐다.  모든 게 가격이 올라 식당이나 마트에서 영수증을 보기 겁날 정도다.  1~2주 전부턴 조금 다른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식품업체들이 하나둘 가격 인상 계획을 철회하고 있고 계획은 없었지만 가격 인상 우려에 한바탕 홍역을 치른 주류업계는 가격을 올리지 않겠다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지난해부터 식품업계의 가격 인상 횟수가 늘어난 건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물류비 급등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원자잿값 상승 때문이다.  제품을 생산하는 비용 부담이 커져 식품업계 전반적으로 수익성이 떨어졌다.  하지만 정부는 유독 식품업계의 가격 인상에 예민한 모습이다.  식품업계가 마치 고물가에 편승해 부당이익을 취하는 것처럼 판단하며 팔 비틀기에 나서고 있다. 정부가 물가 관리에 전방위로 뛰어든 것이다.  생활 체감 물가가 큰 폭으로 오르고 있는 데 대한 움직임이다.  대통령과 경제부총리 등의 불호령이 터져 나오고 관계부처가 발 빠르게 대책을 내놓는 식이다. 공정거래위원회 시장감시국은 통신 3사와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 등 주요 통신협회를 대상으로 현장 조사에 나섰다.  최근 윤 대통령은 비상 경제 민생회의에서 "금융·통신 분야의 독과점 폐해를 줄이고 실효적인 경쟁 시스템을 조성할 수 있는 공정시장 정책을 마련해 달라"고 주문했다.  기획재정부는 주류업계의 소주 가격 인상 움직임과 관련해 제조사에 대한 실태조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국세청은 주류업계와 비공개 간담회를 열고 `소줏값 인상 자제` 의견을 전달했다고 한다. 산업통상자원부도 정유업계를 대상으로 도매가 공개 범위를 확대하고 LPG 가격 안정화에 적극 협조해 줄 것을 요청했다. 업계는 당혹스럽다는 입장이다.  정유업계에서는 "해외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규제"라는 목소리를 내고 주류업계에선 "각종 원부자재 가격이 올라 인상이 필요하다"고 하소연한다.  다행히 식품업계는 정부의 일방적인 요청에도 화답했다.  풀무원과 CJ제일제당이 제품 가격 인상 계획을 철회했다.  하이트진로와 오비맥주, 롯데칠성음료는 소주·맥주 가격 인상을 당분간 하지 않기로 했다. 문제는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간 큰 폭의 가격 상승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가격을 올리지 않아도 될 방법을 찾은 게 아니라 압박에 못 이겨 잠시 보류했을 뿐이다.  정부는 기업에 부담을 지우는 방식의 정책적 요청을 반복하거나 가격 인상을 무작정 통제하려는 생각을 멈추고 납득할만한 대책을 내놓아야 할 때다.  이를테면 인상 가격을 이연하거나 순차적으로 올려 기업의 숨통을 터주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정부의 역할은 시장 참여자가 공정한 룰을 어기고 숨어서 소비자의 주머니를 훔쳐내는 것을 잡아내는 데 그쳐야 한다.  가격 메커니즘에 섣불리 개입하게 되면 `오른쪽 깜빡이를 켜고 왼쪽으로 돈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다.  `자유`는 현 정부가 대표적으로 내세우는 대원칙 아닌가.  자유시장경제를 우선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시장의 가격에 과하게 개입하는 것은 모순이다. 당장은 정부가 가격을 묶어놓을 수 있다 하더라도 결국은 그 부작용이 더 크게 드러날 수밖에 없다.  최근 일련의 모습은 윤석열 정부의 정체성을 흐리는 게 아닌지 우려스럽다.  무역 규모 세계 6위권인 대한민국이 개별 소비재 가격을 일일이 통제하던 과거 권위적 관치의 시대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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