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당시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조국의 운명을 구하다 전사한 호국영웅의 신원이 지난 3일 확인돼 11일 70여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 단장 이근원)은 2008년 5월 강원도 춘천시 동산면 일대에서 발굴된 유해의 신원을 6·25전쟁 당시 `춘천지구 전투`에서 전사한 고(故) 강한찬 일병으로 확인했다.
이로써 지난 2000년 4월 유해발굴이 시작된 이후 신원이 확인된 국군 전사자는 총 235명으로 늘었다.
고인의 신원확인은 국군 장병들에 의한 유해발굴, 병적자료 검증을 통한 기동탐문, 유가족의 유전자 시료채취 등 다양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국유단은 전사연구를 토대로 2008년 5월 강원도 춘천시 동산면 일대에서 발굴을 나선 결과 개인호로 추정되는 곳에서 곧게 누운 자세로 있는 두개골과 정강이뼈 등을 발굴했다.
이후 국유단 기동탐문관이 고인의 병적자료에서 본적지가 경북 칠곡군으로 돼 있는 것을 확인한 후 해당 지역의 제적등본 기록과 비교해 고인의 여동생 강길순(1940년생) 씨를 올해 5월에 방문, 유전자 시료채취 및 유전자 분석을 통해 16년 만에 고인과의 가족관계를 확인했다.
고인은 국군 제6사단 소속으로 6·25전쟁 최초의 승리를 거둔 `춘천지구 전투`(1950년 6월 25일~28일)에서 치열하게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다 장렬히 전사했다.
고인은 지난 1932년 1월 경북 칠곡군에서 2남 3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유가족들의 증언에 따르면 고인은 가정형편이 여의치 않아 부모님을 도와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입대 당시 병적이 확인되지 않아 입대 일자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정전 이후 지난 1957년 2월경 발급된 전사확인서를 통해 `춘천지구 전투`에 참전한 사실이 확인됐다. `춘천지구 전투`는 6·25전쟁 개전일인 1950년 6월 25일부터 28일까지 춘천 옥산포, 소양강, 봉의산 일대에서 북한군의 남하를 지연시킨 구국의 전투이다.
그러나 고인은 전쟁 발발 3일 만인 지난 1950년 6월 27일 18세의 꽃다운 나이로 장렬히 전사했다. 고인의 희생은 국군이 한강 방어선을 구축하고 유엔군이 참전할 시간을 확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는 유가족의 요청에 따라 11일 대구시 서구에 있는 달성토성마을에서 열렸다.
고인의 신원이 확인됐다는 소식을 접한 조카 강영호(1955년생)씨는 "아버지와 고모께서 평생 삼촌을 찾기 위해 노력하셨는데 이렇게 유해라도 찾게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병환으로 누워계신 고모께서 눈물만 흘리시는데 그 모습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 앞으로도 더 많은 6·25 전사자의 신원확인이 됐으면 좋겠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강두용 기자kwondrumkakao@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