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그리고 아버지
[아빠] 명사-격식을 갖추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아버지`를 이르거나 부르는 말. 0대가 된 나는 아버지를 더 이상 아빠라 부르지 않는다. 이제와 다시 부르기도 어색한 그 이름. 어릴 때는 분명히 아빠라 불렀는데 언제부터인가 부모님께서 어머니, 아버지로 격식을 갖춰 부르라 하셨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때부터 부모님과 곰살궂은 마음의 거리는 점점 멀어졌다. 이후 나는 아이가 태어나면 아버지가 아닌 아빠, 친구 같은 아빠가 되고 싶었다.
△아기와 아빠
나는 아기를 무척 좋아한다. 아내와 연애할 때부터 태어나지도 않은 딸과 아들의 이름을 몇 개나 지었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똑 닮은 아이들을 상상하며 좋은 아빠, 멋진 아빠가 되고 싶었다. 난 아기를 좋아하니까 누구보다 아빠 노릇을 잘할 수 있을 거라 자신했다.
결혼 후 드디어 우리 부부에게 사랑하는 아내를 똑 닮은 아들이 태어났고 힘들게 아기를 낳고 기르느라 고생하는 아내를 위해 나는 가장 자신 없는 요리를 제외한 모든 집안일들에 최선을 다했다. 보육교사인 아내는 꾸준히 책들을 섭렵하며 육아에 힘썼고 육아에 어설픈 나는 그저 아내의 양육을 따라가기만 했다. 엄마가 육아를 잘하니 아빠인 나는 바깥일과 집안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아기를 좋아하면서도 육아는 모두 아내의 몫이었다.
△엄마와의 이별
아기가 첫돌 치레를 심하게 했었는데 두 돌을 맞이할 때에도 어김없이 돌 치레를 했다. 심지어 1년 내내 감기 한 번 안 하던 아내도 함께 고열과 몸살을 앓아 그동안 출산과 육아에 많이 지쳤다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두 달 뒤 아내는 혈관육종이라는 희귀암 진단과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고 나는 아내의 간병과 육아를 위해 육아휴직을 시작했다. 아기와 아내를 위한 육아휴직이지만 집안일만 할 줄 알았던 나는 육아에 너무나 부족하고 어설퍼 여전히 아내가 아픈 몸을 이끌고 육아에 전념했다.
시간이 지나며 아내는 병이 악화됨에도 엄마로서 아기를 위해 살고자 더욱 정신 차리고 최선을 다했지만 오히려 나는 불안한 마음에 더욱 무너지며 흔들리기 시작했고 아내와 아기에게 화를 내는 일이 잦아졌다. 결혼하면 아내에게 다정하겠다고, 아기가 태어나면 절대 화내지 않는 멋진 아빠가 되겠다고 다짐했던 나였는데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부끄럽고 못난 남편이자 아빠가 됐다. 시한부 선고 후 아홉 달이 지나고 세 돌을 앞둔 아기는 엄마와 영원한 이별을 했다.
△못난 아빠
모든 게 막막했다. 하루아침에 엄마를 잃은 내 아이를 위해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랐다. 아내처럼 더욱 정신 차리고 굳게 마음먹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 부끄럽게도 아빠인 나는 엄마 없는 아이로 자라며 손가락질받을까 두려워 이제 세 돌이 지난 너무나도 어린 아이를 더 엄하게 대하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떠난 아내에게 절대 용서받지 못할 양육 태도를 가졌다. 내가 그토록 되고 싶었던 친구 같은 아빠가 아니라 악마같이 무서운 사람이 됐다. 또한 아이가 엄마를 잊을까 두려운 마음에 주말이면 아이를 데리고 봉안당만 다녔다. 매일 엄마가 보고 싶다는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엄마를 찾아가는 일이라 생각했다. 방방곡곡 아내와 함께 다니던 추억이 자꾸만 떠올라 슬프다는 핑계로 아이와의 여행도 포기한 채 오직 봉안당만 생각했다.
또한 아이가 좋아하는 장난감들을 많이 사주고 그냥 놀아주는 게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일이라 생각했다. 아내처럼 책을 보며 육아에 대해 공부할 생각도, 아내가 했던 육아를 따라갈 생각도 하지 않았다. 1년이라는 시간을 그렇게 보내다가 문득 아빠인 내가 아이에게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자괴감이 들었다. 나의 힘듦과 슬픔만을 생각하며 아이를 위한 건 하나도 없었다. 늦게나마 정신을 차리고 주말이면 봉안당이 아닌 여행을 시작했다. 아이에게 더 이상 슬픔이 아닌 엄마와의 추억을 함께하며 새로운 행복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대구 100인의 아빠단과의 만남
새학기가 시작된 3월 어느날, 어린이집 공지사항에 5기 대구 아빠단 모집글이 올라왔다.
아빠단에 대한 소개와 주요활동들을 보자마자 한치의 망설임없이 곧바로 신청을 했고, 발표만 손꼽아 기다렸다. 육아에는 너무나도 서툴렀기에, 아이의 나이가 아빠단 모집대상 기준으로 마지막이었기에 더욱 절실했다. 아빠로서 내 아이를 위해 진작 이런 정책과 모임을 찾아보지 않았던 게 너무나 미안하고 후회됐다.
신청 2주 뒤 드디어 5기 대구 100인의 아빠단 일원으로 선정이 되어 온라인 커뮤니티에 가입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전국 아빠단의 지난 활동들을 둘러보았다. 매년 아빠단에 참여하고 미션들을 완주하는 아빠들, 아이와 방방곡곡 여행을 다니며 쉴새없이 좋은 추억들을 가득 채우는 아빠들, 아이와 함께 끊임없이 다양한 활동들을 체험하고 꼼꼼히 사진과 글로 남기는 아빠들, 좋은 교육과 행사를 알아보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아빠들, 그리고 멋진 철학과 목적을 토대로 뜻깊은 미션을 제공하는 멘토 아빠들. 선배 아빠단의 활동들은 실로 대단했고 나의 설레는 마음은 다시 자괴감과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더는 못난 아빠가 될 수 없었기에 선배 아빠단의 활동들을 다시 읽으며 마음을 잡았고, 많은 아빠들이 반기고 응원해주어 더욱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뒤, 대구 100인의 아빠단 발대식에 참석하여 위촉장까지 받으니 더욱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걱정과 두근대는 마음으로 첫 미션만을 기다렸다.△매주 기다려지는 미션, 그리고 다양한 체험프로그램
매주 월요일마다 주어지는 <놀이, 건강, 일상, 교육, 관계> 총 5가지 분야의 미션들.
5월 넷째 주 월요일,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2023년 100인의 아빠단 첫 미션이 주어졌다. 시작인만큼 멘토님께서 가볍고 즐거운 미션을 주셨다. 이런 활동은 처음인지라 서로 어색하기도 했지만, 아이는 이내 열심히 잘 따라 주었고 성공적으로 첫 미션을 마칠 수 있었다. 또한 미션인증에 많은 아빠들의 칭찬과 격려가 가득했기에 더욱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무슨 일이든 시작과 처음이 어렵다고, 첫 미션 후 다행히 걱정은 사라지고 다음 미션이 기다려졌다. 메말라 있던 나의 육아에 단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즐겁고 행복한 변화는 바로 아이였다. 처음 겪어보는 낯선 미션에 아이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미션수행을 했지만, 주차가 계속될수록 아이도 다음 미션을 손꼽아 기다리며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아이는 일요일부터 월요일 아침까지 시시때때로 다음 미션이 나왔는지 확인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나 역시 매주 월요일 아침에 눈만 뜨면 주간미션부터 확인했다. 미션이 확인되면 어떻게 더 잘 진행할지, 어떻게 하면 아이가 더 좋아하고 즐거워할지, 더욱 생각하고 고민하는 아빠가 되었다.
주간미션 외에도 인구보건복지협회 대구경북지회에서 진행하는 ‘아빠와 함께하는 신체놀이, 천연비누 만들기, 화분 만들기, 동물 먹이주기, 쿠키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프로그램들이 있었기에 더욱 부담없고 즐겁게 아이와 함께 할 수 있었다.△25주간의 완주, 계속되는 배움
25주 동안 멈추지 않고 진행된 25개의 미션들. 멘토님들의 꼼꼼한 정성과 멋진 철학이 깃들었기에 미션 하나하나가 정말 소중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아빠단 활동이 너무나 아쉬워, 지난 미션들을 수시로 돌아보며 아이와 함께했던 순간순간들을 추억한다. 활동이 끝나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아빠단 단원들의 육아경험과 노하우 등을 공유하고 지속적으로 배울 수 있기에 늘 든든하다. 아빠의 육아, 그리고 주간미션처럼 아이와 함께하는 활동들은 마음의 짐이 되거나 부담스럽고 어려운 일이 아닌, 늘 우리 생활 가까이 있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끝맺으며
작디 작은 생명이 우리 곁으로 와 함께하며 하루하루 자라는 걸 보고 있으면, 그저 신기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이렇게 작고 귀여운 소중한 내 아이와 함께한다는 건, 아빠라는 존재로서 무엇보다 크나큰 행복이자 축복이다. 아이가 커가는 순간과 시간들은 절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아이는 늘 엄마아빠와 함께하는 순간만을 기대하고 기다린다. 그리고 그 순간순간들은 아이의 소중한 평생의 추억이 되고, 영원이 된다. 아이뿐만 아니라 엄마아빠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가족은 늘 함께한다. 출산과 육아는 엄마 고유의, 혼자만의 몫이 아닌 삶의 동반자인 아빠와 함께하는 것. 어렵지 않다. 그저 함께면 된다. 그러면 행복은 절로 따라온다. 100인의 아빠단도 그렇게 시작된 것이 아닐까.마지막으로, 열 달 동안 우리 아기 소중히 품어 예쁘게 낳고 기르느라 고생한 아내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여보, 영원히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