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송대에 서화가 문동(1018년~1079년)은 양주에서 관직을 지내면서 대나무숲으로 가 대나무를 세밀히 관찰해 대표적인 북죽화가가 됐으며 이를 통해 송대 사군자 북죽의 기록을 세웠다.
9C 등창우는 다양한 꽃을 재배하고 세밀하게 관찰해 최초로 매화를 단독으로 그렸다.
12C 범성대(1126년~1193년)의 범촌매보의 발간과 송대의 송백인이 상, 하 2권의 `매화희신보(梅花喜神譜)`를 제작한 바 있으며 이는 글과 그림, 시가 함께 수록된 최초의 화보이다.
`매화희신보`는 자연 관찰을 통해 매화가 봉오리를 맺고 꽃이 피고지는 과정을 수록한 화보이다.
자연 상태의 식물 관찰과 상직적 가치를 부여해 점차 사의적 양식으로 발전하게 됐다.
실크로드를 통한 문화의 유입으로 당시 화초가 다양하게 재배됐고 삼송대에는 난초가 대량으로 재배됐다.
따뜻한 지역에 서식하는 난초는 사군자의 다른 식물에 비해 생산량이 적었다.
송대 이전에 고대 난초는 향초로 불리던 택난이었으며 송대에 그려지기 시작한 난초는 정사초의 난으로 이를 통해 시대의 구분이 가능해졌고 송대에 이르러 사군자화의 난초가 택난과 구분되는 계기가 됐다.
지난 2003년 대만 대만 생물학자 반부준의 `시경식물도감`을 통해 택난과 난초가 구분됐고 송대를 기점으로 난초가 사군자화목으로 인식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