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1820년 마차를 바꿔 타며 두 달 이상 걸려 도착한 곳이 러시아 남쪽 끝단 키이우였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볼 때 키이우는 까마득히 멀고 먼 남쪽 지방. 한번 가면 다시는 돌아오기 힘든 유배지였다.  강제로 제국의 수도에서 쫓겨난 푸시킨은 울화통이 치밀었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데~`  그러나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나쁜 면만 있는 게 아니었다. 지역 사령관의 배려로 푸시킨은 오데사, 크림반도 등 우크라이나와 그 주변 지역을 자유롭게 여행하며 새로운 세상에 대해 눈을 떠갔다.  먼저 오데사.  시인은 오데사에서 평생 잊지 못할 사람을 만난다. 오데사 지역 사령관인 백작 부인 안나 케른. 시인은 아름답고 지적인 안나 케른에 반한다.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괴로워하는 두 사람. 백작 부인은 시인에게 홍옥 반지를 선물한다(시인은 죽을 때까지 홍옥 반지를 끼었다).  두 사람과 관련된 소문이 돌자 급기야 백작은 푸시킨에게 오데사를 떠나라고 명한다. 시인은 홍옥 반지를 모티브로 `부적`이라는 시를 쓰는데 이 시는 러시아 문학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연애시로 평가된다.  오데사를 떠난 시인은 다른 지역을 여행했다. 그러면서 권력의 중심부에선 느낄 수 없었던 변방의 정서를 배웠다. 푸시킨 문학의 금자탑으로 평가되는 `대위의 딸`이 바로 유배 생활 중에 영감을 얻어 쓰였다.  푸시킨이 시베리아로 유배를 갔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시베리아 유형도 어떤 식으로든 푸시킨 문학의 깊이를 심화시켰을 것이다. 도스토옙스키가 그랬던 것처럼.  그랬다면 `대위의 딸`은 결코 태어나지 못했다. 시인은 러시아 남쪽 변경 지역을 여행하면서 불과 50년 전 있었던 `푸가초프 반란`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해 듣는다.  때는 남편을 폐위시키고 스스로 차르에 오른 예카테리나 2세 시절. `야이크 코사크` 지도자 푸가초프(1742~1775)는 농노들을 조직해 반란을 일으켰다.  전투 경험이 풍부한 푸가초프는 자신을 `죽은 표트르 3세`라고 칭하며 `농노 해방`과 `인두세 폐지`를 내걸고 농노들의 마음을 산다. 코사크인과 농노들이 주축이 된 반란군은 파죽지세로 러시아 남부(카스피해와 흑해 사이 지역)를 장악하고 볼가 지방과 우랄 지방까지 세력을 뻗친다.  하지만반란은 푸가초프가 1775년 정부군에 의해 처형되면서 막을 내린다.  푸시킨은 푸가초프 반란과 관련된 두 권의 책을 쓴다. 하나는 치밀한 현장 답사와 자료를 바탕으로 논픽션 `푸가초프 반란사`. 다른 하나는 `대위의 딸`이다.`대위의 딸`의 배경은 앞선 언급한 대로 푸가초프 반란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표트르 그리뇨프. 군에 입대한 그리뇨프가 변방의 작은 요새로 배치된다. 변방의 요새에 근무하던 중 지휘관인 대위의 딸을 연모하게 된다. 여기서 그리뇨프는 역사적 격동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그러나 시인은 소설에서 반란군의 편에 서지 않는다. 명분에는 공감하지만 수단의 폭력성에는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시인은 주인공 그리뇨프의 입을 빌려 말한다.  "힘과 억압으로 인간을 변화시킬 수 없다. 최상의, 그리고 가장 간단한 방법은 교육을 통해 사랑을 가지고 그 덕성을 고양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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